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키코 비/결혼 후 (문단 편집) === 상황 정리 === 그런데 이런 상황은 평소 [[후미히토]]+[[키코 비]]+[[궁내청]]의 행동을 보면 정말로 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후미히토 부부는, [[아키히토]] 덴노가 "자신의 생전에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양위하겠다"고 발표한 뒤로 나루히토 황태자, 후미히토 친왕, [[구로다 사야코]] 3남매와 아키히토 내외의 첫 식사 당일에 표정이 정말 안 좋았다. 후미히토는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대놓고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고, 평소 같았으면 손을 흔들었을 키코 비는 조용했다. 게다가 평소 후미히토 내외와 친했던 궁내청이 아키히토의 양위 의사에 대해 차관이 나서 직접 반대 의사를 발표한 것을 보면, 후미히토 부부나 궁내청이나, [[나루히토]] 황태자가 차기 천황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일본 황실]]은 '''1990년 이후로 __30년 가까이 현재진행형__으로 혼란과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중인데,''' 시기별로 원인이 다르다. 1990년 [[후미히토]]의 결혼과 이듬해 [[마코 공주]]의 탄생 이후까지는 [[나루히토]] 황태자의 결혼 문제가 원인이었다면, 2001년 [[아이코 공주]]의 탄생 전까지는 황태자 부부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고, 그 후는 여계 천황을 인정하는지 여부가 혼란의 불씨였다. 하지만 2006년 [[히사히토]]가 탄생한 후에는 나루히토 vs 후미히토+[[궁내청]] 사이의 황위 계승 문제가 혼란을 일으켰다. 여기에는 아이코 공주와 히사히토 중 누가 황위를 이어받느냐 뿐만 아니라, '직계 후계자이지만 아들이 없는 황태자'와 '방계지만 아들이 있고 [[일본/정치]] 성향과 잘 맞아 떨어지는 후미히토' 중 누가 황위를 잇느냐는 문제도 같이 있었다.[* [[아키히토]] 덴노의 양위 표명이나 2018년 2월 9일자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 관련 기사를 보면, 이 문제는 천황 부부가 아니라 [[궁내청]]과 이에 동조하는 우익 주간지가 부추겼다고 봐야 한다.] 이 현상은, [[조선]] 시대에 당파들이 왕자들을 1명씩 찍고 황위 계승 다툼을 벌였던 것에 대입하면 이해하기 쉽다. 지금 [[일본 황실]]은 정치 성향이 [[아키히토]]와 [[나루히토]]가 진보고, [[후미히토]]와 [[궁내청]]이 우익이다. [[입헌군주제]] 특성상 황실을 관할하는 [[궁내청]] 인사들 역시 정부와 연결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지금 [[일본 정부]]는 우익 성향, 따라서 궁내청도 우익이다. 궁내청은 [[히사히토]] 탄생 이전부터 후미히토 내외를 더욱 우대했는데, 그 배경은 서로 둘의 성향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히사히토가 태어났으니 궁내청이나 우익이나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더구나 후미히토 내외는 예전부터 야심이 대단했고[* [[키코 비]]는 결혼 전부터도 야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가쿠슈인]] 대학 신입생 시절 만난 [[후미히토]]가 왕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때부터 황실로 시집가기 위해 노력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키코 비/결혼 전]] 참조.], 여기에 아들로 인해 한동안 [[아키히토]] 덴노-[[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의 총애를 업기까지 했으니, 당연히 키코 비와 그의 남편 후미히토가 기고만장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2017년 9월 [[카코 공주]]가 [[영국]] [[리즈 대학교]]로 [[유학]]가기 전 [[후미히토]]가 주최한 파티에 천황 부부가 참석했을 때, [[나루히토]] 황태자와 [[마사코 황후|마사코 황태자비]] 부부가 참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 기사에 '키코 비가 [[히사히토]]를 낳은 후 [[일본 황실]]의 균형이 흔들렸다.'는 요지의 문장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 '그 자리는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가 흔들린 황실내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두 아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의 이야기까지 있었다. 보도를 함부로 하지 않고 내용도 적절히 걸러내는 황실 관련 기사가 저럴 정도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결국 [[후미히토]]와 [[키코 비]] 내외는 아들 [[히사히토]]를 통해 권력이 높아지자, 미래에 [[천황]]과 [[황후]] 자리까지 오를 생각을 가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궁내청]]은, 후미히토가 천황에 오르면 서로 성향이 같으니 더욱 자기들이 원하는 새로운 시대가 개막하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진보적인 [[나루히토]]는 황태자 시절부터 계속 궁내청과 충돌했는데, 권력의 원리를 보면 궁내청이 장남과 차남 어느 쪽에 붙는 게 유리할지 자명하다. 작년(2017년 12월 1일)의 황실 회의는 공교롭게도 [[아이코 공주]]의 만 16세 생일에 열렸다. 지금까지 [[궁내청]]이 황태자 부부에게 엿먹인 전적을 생각하면, 이것도 그 일환일 수 있다. 궁내청은 [[아키히토]] 덴노의 뜻대로 [[나루히토]] 황태자가 천황직을 승계하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 다음 구도를 [[후미히토]]-[[히사히토]]로 정한 것과 그 발표를 아이코 공주의 생일로 잡아서 집에서 딸의 생일을 제대로 치루지 못하게 최대한 방해하는 것 정도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을 수 있다. [[나루히토]]가 천황이 된 후에도 [[후미히토]]-[[키코 비]]와 [[궁내청]]의 반발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 될 수 있다. [[아키히토]] 덴노 사후에는 나루히토에게 후미히토에게 양위하라는 압박을 넣을 수 있으며, 나루히토가 조금만 몸이 아파도 양위 운운하는 것도 쉽다. 심지어 [[마사코 황후|마사코 황태자비]]가 무리해 조금만 쉬어도 '아내가 제대로 [[황후]]의 일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압박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몇 십 년 후에 나루히토가 지금 아키히토의 나이가 되면 더 난리를 피울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나루히토]]의 성격상 아무리 동생이라고 하더라도 제왕학을 받지 않았고 집안 자체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는 [[후미히토]]에게 천황 자리를 양위할 일은 없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 외의 이유로 갑작스런 사태가 발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양위 결정으로 [[후미히토]] 내외와 [[궁내청]]의 기세가 한 풀 꺽인 것은 틀림없다. 후계자가 있더라도 차남은 어디까지나 차남일 뿐이라는 사실을 현 천황이자 아버지/시아버지인 [[아키히토]]가 못 박은 것이기 때문이다. 후미히토를 황태제로 하여 [[황태자]] 대우를 해주고 [[키코 비]]도 [[황태자비]] 대우를 받게 해주면서 [[히사히토]]의 계승을 황실 회의로 확실시 한 것이 이들이 할 수 있었던 최대의 조치였던 것이다. 사실 [[후미히토]] 내외를 [[황태자]] 대우하는 것은, 현재 [[일본 황실]] 상황을 보면 어쩔 수가 없기는 하다. 황족의 주요 임무는 공무인데, 황태자 부부가 해야 할 일과 방계 황족이 할 일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나루히토]]가 천황이 되면 어차피 황태자가 할 일을 누군가가 대신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우나 관리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사람은 [[후미히토]]밖에 없는데, 그 집에는 [[히사히토]]까지 있으니 그만한 우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루히토 승계 후 아키시노노미야 일가가 동궁으로 이사하는 일은 향후 몇 년 간은 없다.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가 양위 후 지낼 곳이 동궁으로 결정되었고, 나루히토 일가도 황궁 보수 문제로 또 몇 개월을 동궁에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울 형이랑 아바마마, 어마마마가 발목 잡네.~~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현재 [[일본 황실]]에는 천황까지 합해도 남성 황족이 5명밖에 없어서, 대부분의 공무는 여성 황족들이 하고 있다. 그 5명 중에서도 고령인 [[아키히토]] 덴노와 남동생 [[마사히토]]를 제외하면 남는 사람은 [[나루히토]], [[후미히토]], [[히사히토]]뿐으로, 결국 대부분의 공무는 여성 황족들의 담당이다. 문제는 일본 황실은 여성 [[미야케#s-3]]조차 인정하지 않아서, [[공주]]는 결혼하면 평민이 된다. 무엇보다 황실에서 가장 많은 공무를 하고 있는 집안은 바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다. 문제는 올해(2018년) 가을에 장녀인 [[마코 공주]]가 결혼을 해 평민이 될 것이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예정이었지만 물건너갔다~~ 남은 공무량은 고스란히 [[후미히토]], [[키코 비]], [[카코 공주]]의 차지가 된다. 그리고 카코 공주까지 시집을 가게 된다면 카코 공주 역시도 평민이 되어 황적에서 이탈한다. 여기에 황태자가 해야 할 임무까지 안게 되면, 공무량은 [[궁내청]]에서 무슨 수를 쓰지 않는 이상 지금보다 더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얼마 전에 올라왔던 여성 [[미야케#s-3]] 관련 기사에서 이를 두고 황실 관계자가 '가족 노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2월에 "결혼을 2년 미루기로 했다"는 발표가 났지만, 그 사이에 [[공주]]의 미야케 창설이 허용될지는 묘연하다. 어쩌다가 한 번씩 기사화가 되기는 하는데 법안이 제출될 기미도 안 보이는 중. 일본 내 우익들은 "계승권을 안 주는 미야케라도, 후에 여계 천황이 나올 수 있다"며 죽어라 결사 반대하고 있다. 정리하면 [[후미히토]]와 [[키코 비]]는 아들 탄생으로 원하던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결정적으로 [[천황]]이 될 권력은 갖지 못했고, 역시 원하던 황태자 대우를 받게 되어 언론의 관심을 더 많이 받게 될 테지만 도리어 할 일이 많아지는 아이러니한 미래를 맞게 된 셈이다. 게다가 키코 비는 유일한 후계자를 잘 양육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대로 된 것이나 다름 없다. 만약 과욕을 부리지 않고 [[히사히토]]를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코 공주]]가 천황 후계자가 되는 동시에 자기 딸들도 [[미야케#s-3]] 당주가 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일본 황실]] 내의 혼선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키코 비]]는 토사구팽 또는 자업자득과 같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아들 낳으라고 압박하기에 노력해서 간신히 낳았더니 잘 키우라는 부담만 주면서[* [[키코 비]]의 입버릇이 '[[히사히토]]는 양 폐하의 목숨과 같다.'와 '직원 수가 적다', '돈이 없다'라고 한다. 첫 번째만 봐도 어떤 부담인지 알 수 있을 정도. 그리고 얼마 전 기사에, 히사히토가 어릴 때 정원에서 놀다가 돌에 턱을 부딪혀 꿰맨 적이 있었을 때도, 키코 비가 패닉에 빠져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정작 동궁 같은 대우는 안 해주고, 몸이 아픈 손윗동서인 [[마사코 황후|마사코 황태자비]]를 대신해 열심히 공무했는데, 정작 [[황후]] 자리는 그동안 휴식하던 손윗동서에게 넘어 갔으니 말이다. 본인도 야심이 있어 과욕을 부렸겠지만, 열심히 한 대가에 비해 최종 성적은 제자리 걸음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최근 기사에 따르면,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터지자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키코 비]] 사이에 분열이 발생했다고 한다. 키코 비의 황족관과 자녀 교육에 불신이 좀 있었던 차에 첫 손주의 결혼 소동으로 인하여 키코 비가 자녀의 결혼도 제대로 못 시켜서 황실 망신을 시킨 것에 대해서 아예 불신하게 되었다는 것. 실제로 키코 비는 요즘 종종 "양 폐하를 뵐 면목이 없다"고 말한다는 모양. 기사는 저번에 미치코 황후가 심야에 동궁으로 갔던 것에 대해, 대놓고 "[[마사코 황후|마사코 황태자비]]를 지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썼다. 한 마디로 미치코 황후는 키코 비가 [[황후]]감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후미히토]] 내외가 초래한 결과이다. [[궁내청]]과 우익 주간지의 농간과 언론 플레이도 한 몫 했지만, 내외가 드러내놓고 오만방자하게 행동한 것도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주간지 기사를 확인한다는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가 키코 비에 대한 나쁜 소문을 모를 리 없을 테고, 무엇보다 역사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키히토]]가 후미히토와 [[궁내청]]의 성향을 아는 것은 더욱 당연하다. 그리고 얼마 전 정양 때는 2004년 인격부정 발언 이후로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아키시노 일가와의 정양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키코 비]]의 의사였다는 모양. 키코 비는 한때 시어머니와 갈등은 있었으나 이후 개선되어 [[마사코 황후|마사코 황태자비]]와 가까이 지내는 것으로 시어머니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의 신뢰를 되찾고 [[히사히토]]의 계승에 대한 협력을 얻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한다. 동시에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에 대한 협조도 얻고. 이것만 봐도, 이번 양위 발표로 차남 내외의 기가 얼마나 꺾였는지 잘 알 수 있다.[* 당시 기사에서 황실 관계자가 어쨌거나 "[[마사코 황후|마사코 황태자비]]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히사히토]]의 승계도 황실 회의로 못 박아 두긴 했지만, [[아키히토]]의 양위 발표에 대한 [[일본 총리]]의 태도와 영향력을 고려하면 [[나루히토]]가 [[천황]]인 이상 승계가 어렵게 이루어 질 수 있다. 나루히토가 천황의 위치를 이용해 무남독녀를 황위에 오르도록 시도하는 것도 가능한데다, 지금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로 후미히토 일가가 황위를 잇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관심도 황태자 일가와 [[후미히토]] 일가에게 쏟아지는 양상이 상당히 달라졌다. [[마사코 황후|마사코 황태자비]] 관련 기사는 댓글은 여전히 부정적이어도 내용만은 극히 걸러내고 조심하는 느낌이 드는데, [[키코 비]]는 툭하면 자녀교육 관련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로 [[후미히토]]라면 또 모를까, [[키코 비]]는 자녀교육 때문에 계속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 지금 [[마코 공주]] 결혼 문제로도 툭하면 기사화되고 있는데 앞으로 [[카코 공주]], 더 나아가 [[히사히토]]까지 있으니 얼마나 더할지는(…) 게다가 자녀들이 모두 성적과 진학에 있어서 헛점을 많이 보였기 때문에 그마저도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것이 당연하다. 반면 후미히토는 키코 비보다 이쪽 문제로는 덜 민감하다. [[마코 공주]] 결혼 관련 기사만 봐도, 자녀 교육으로 말이 나오는 것은 [[키코 비]]지, [[후미히토]]가 아니다. 키코 비는 엄격하게 교육했다 하고 후미히토는 방관형이란 것이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인식이고, 댓글에서도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는 후미히토에게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는 불평이 보이는데도, 자녀교육의 초점은 키코 비에게 맞춰져 있다. [[일본 황실]] 특유의 [[남존여비]] 사상도 있고, 아무래도 방임형인 후미히토는 아무 것도 안 하니, 오히려 욕 들을 일이 적다. 반대로 이것저것 시키거나 통제하는 키코 비 쪽에 시선이 쏠리는 것도 있을 것이다. [[후미히토]]의 자녀교육 기여도가 0% 수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 두 공주의 교육 상태가 100% 키코 비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남은 장남이고 차남은 차남이며, 후계자를 낳아줬어도 여성은 자녀를 키우고 내조하며 필요한 경우 남편 대신 비난을 떠안아야 한다는, [[일본 황실]]의 고질적인 구시대적 [[남존여비]]&[[가부장제]] 문화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키코 비]] 개인은 억울할지도 몰라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워낙 평판이 안 좋은데다 대놓고 천황 자리를 노리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보인 탓이 크니 뒤통수를 논하기 앞서 본인 처신이 어땠는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키코 비가 본인만의 잘못은 아닌 부분까지 다 떠맡아 억울하게 욕을 듣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키코 비가 잘못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 왕이 절대 권력을 가지는 전제군주제에서도 왕위계승자를 변경하는 일로 인해 나라가 한바탕 뒤집어졌던 판국에, 형식과 권위만 남아있는 현대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현대의 군주국들에서 자기들이 나서서 이러저러하면 왕위를 빼앗아올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정말로 황태자가 바뀌었다면 [[일본]] 전체가 뒤집힐 사태인 것은 물론, 남성 황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 상황에서 수십년간 황태자였던 [[나루히토]]를 사실상 황실에서 내몰아내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것은 현 천황인 [[아키히토]]가 역사관 문제가 없더라도 나중의 천황 계승에 대해 몇 분만이라도 고민해봤다면 당장에 답이 나오는 문제다.[* 지금만 해도 계승자가 [[나루히토]], [[후미히토]], [[히사히토]] 셋뿐인데, 나루히토 대신 후미히토를 황태자로 세웠다면 사실상 나루히토는 황실에서 쫓겨나는 것이나 다름없고, 계승자가 둘로 줄어드는 일이다. 처음 정해진대로 나루히토로 계속 간다고 해도, 계승자가 부족하긴 하지만, 어쨌든 숫자라도 하나 더 많고, 무엇보다 만약의 경우에 여계 천황이라는 생각해볼 방법이라도 있다. 이게 실현되면 [[아이코 공주]]를 더해서 1명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여러가지 논란이 있긴 하지만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도 보태볼 수 있다. 남성 후계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루히토를 후미히토로 대체하는 것은 이런 모든 방책을 불가하게 만드는 것으로, 히사히토의 결혼과 출산 여부에 따라서 사실상 [[일본 황실]]의 혈통 단절을 부르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도박이며 이러한 논리는 여성 미야케 찬성론자들의 주요한 논리. 물론 우익들의 주장을 일정 부분 존중해서 구 황족이나 구 화족과 결혼하는 조건 등을 걸어두는 경우도 있다.] 기사를 보면 [[키코 비]]는 [[마사코 황후|마사코 황태자비]]가 요양에 들어간 후로 '만약 내가 [[황후]]가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공무에 임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자는 사회 전반을 주름잡고 있던 우익 세력이 좋아하지 않는 [[나루히토]] 황태자와 천황의 후계자가 될 아들을 못 낳았다고 비판을 듣던 마사코 황태자비의 것이 되었다. 두 내외가 아들의 위세와 우익들, [[궁내청]] 등을 믿어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정작 [[아키히토]]와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의 깊은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결국 [[아키히토]]는 후계자를 바꿀 의사가 없었으며,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는 사람을 보는 눈이 냉정했다.[* 바꿀 의사도 없었겠거니와, 일본 황족 구성을 볼 때 바꿀 수도 없다.] 아들을 낳으라고 압박한 것에는 만세일계로 황통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아들을 낳아주었다 해서 황위까지 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역사의식을 중요시하는 아키히토에게 동조하지 않았던 [[후미히토]]는 크게 자충수를 뒀다.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가 작은며느리 [[키코 비]]를 불신하게 된 것은 황족관 때문이다. 원래 전부터 좀 불신하다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로 완전히 불신하게 되었다고. 기사에서는 "미치코 황후의 신뢰를 잃은 것이 키코 비의 천추의 한"이라고 적혀있다. 키코 비가 자녀교육을 잘 하지는 않았다는 게 분명해진 것. 미치코 황후는 재벌이어도 평민 신분으로 황실에 시집을 와[*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가 시집 올 당시(1959년)에는 이미 [[신적강하]](1947년)가 이루어진 후여서, [[다이쇼 덴노]]의 직계 자손들을 제외한 모든 방계 황족들과 [[화족]]들은 평민이 되었지만, (구)황족과 (구)화족의 황실 내 영향력이 아직 꽤 막강할 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황태자비는 황족 가문의 딸들 또는 화족 중에서도 [[고셋케]]라고 불리는 가문의 딸들 중에서 뽑는 것이 당연한 관행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재벌]] 딸이라 한들, 평민 출신인 [[미치코 상황후|쇼다 미치코]]가 황태자비가 되는 건 파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미치코를 그냥 평민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뭐한데(…) 미치코는 대재벌 가문의 딸에, 어머니인 쇼다 후미코(正田富美子)는 옛 화족([[백작]])인 소에지마(副島) 가문의 딸이었다. 그런데도 평민이라고 [[미치코 상황후/갖가지 시집살이 에피소드|지옥 같은 시집살이]]를 겪었다!] [[미치코 상황후/갖가지 시집살이 에피소드|호된 시집살이]]를 경험하면서, 황실의 결혼은 단순히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고 한다. 그런 시어머니에게 잘 보여야 할 [[키코 비]]는 조금만 조사해보면 결혼을 거부하는 게 당연한 [[코무로 케이]]와 큰딸 [[마코 공주]]의 결혼을 추진하여 여러가지 논란을 자초하면서 황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키우고 있는데, 이는 결국 [[미치코 상황후|미치코 황후]]가 [[키코 비]]에 대해 '황족으로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에 더해 자칫 잘못하면 수 십년 후에는 유일한 황족 남성으로 천황 자리에 오를 [[히사히토]]가 키코 비의 손에서 자라는 것 자체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데 크게 기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